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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pical Madness.
History

방송을 켜놓고 작업을 하다보니 중간에 식사를 챙기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늘 밥 때를 대신해 바나나를 챙겨 먹곤 했는데, 그 마저도 종종 잊어버려서 책상 위에 한송이 그대로 방치되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고동색으로 완전히 변해버린 바나나를 먹고 있던 나를 본 시청자 한 분이 남은 바나나를 맛있게 처분할 수 있는 방법으로 '오븐 없이 바나나 빵 굽는 법'이라는 레시피를 보내주셨다. 분명 레시피를 차근차근 따라 만들었는데도 내가 만든 바나나 빵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초콜릿 칩과 바닐라 시럽을 넣었는데도 마치 오래 전에 버려진 소파의 썩은 스펀지를 뜯는 것 같은 맛이 났다. 게다가 바나나의 섬유질이 마치 괴생명체의 모세혈관처럼 뒤덮여있는 그 흉측한 모양새를 보니 도저히 먹을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렇게 미처 다 먹지 못한 바나나빵을 추억으로 남기기 위해 밀폐용기에 담아 그대로 작업실에 보관했다.

 

그렇게 2년이 지난 어느 날, 작업실 벽에 기대어 서있는 내 작품들 사이사이로 마치 그 길이 꽤나 익숙한 듯 유유히 지나가는 쥐 한 마리가 방송 카메라에 잡혔다. 당시 사용하던 작업실은 문래동 철공소 골목에 있는 어느 1층 건물이었는데, 주변에는 식당도 많아 추운 겨울날 바깥의 쥐들이 보금자리로 삼기에 딱 좋았던 것이다. 이 모습을 실시간으로 목격한 시청자들은 그게 모두 바나나빵 때문이라고 놀리며, 그 쥐에게 '히더지의 쥐'라는 뜻인 'the 쥐'라는 별명까지 붙여주었다. 이 두 가지 사건이 결합하여 '히더지가 만든 썩지 않는 바나나 빵을 먹은 쥐가 바나나 좀비 바이러스를 퍼뜨린다'는 아이디어가 탄생했다. 만약 언젠가 현실에서 좀비 사태가 실제로 일어난다면, 함께 원정대를 구성하여 생존을 꾀하자고 장난처럼 약속했던 시청자들과 내가 정말로 10년 후, 좀비사태가 현실로 다가오자 온라인 세계가 아닌 실제 세계에서 마주하게 되면서 펼쳐지는 모험 이야기다.

 

이 작업을 위해 우선 '만약 실제로 좀비 사태가 일어난다면 함께 원정대를 결성해 팀에 합류할 의사가 확실한 사람'을 시청자 중에서 실시간 투표로 선발하였고, 그 중 합류 의사를 밝힌 열 한 명을 <열대광기Tropical madness>의 스토리를 이어 갈 등장인물로 캐스팅 하였다. 추첨 된 시청자들은 마치 자신이 스토리의 등장인물이 된 것처럼 상상하며 '만약 좀비 사태가 발생한다면'이라는 주제로 인터뷰에 응답하였는데 '좀비 사태'에 관한 직접적인 질문 보다는 응답자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는 질문들을 위주로, '닉네임의 뜻이 무엇인지', '자기 전에 하는 일은 무엇인지', '가장 아끼는 물건은 무엇인지', '요즘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은 무엇인지' 와 같이 내면을 이해할 수 있는 질문들을 중심으로 인터뷰를 진행하여 캐릭터가 갖게 될 다면적인 특성을 파악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를 통해 '솜사탕을 파는 사주 전문가', '밥이 보약이라 외치는 민간요법 박사', '연애를 글로 배운 기계공', '공익 출신 밀리터리 덕후' 등 인터뷰를 나누었던 시청자 각각의 여러가지 특징들을 살려 재해석하였다.  

 

열대광기에 등장하는 '히더지(김두희)'라는 캐릭터는 필요할때마다 시청자들에게 그리도록 하여 콜라쥬 하였다. 시청자들이 모두 동일한 화면을 통해 '히더지(김두희)'라는 한 인물을 관찰하더라도, 보는 사람의 시선에 따라 주목하는 요소나 특징이 다르기 때문에 캐릭터의 해석도 각각 달라진다. 이렇게 매 장면마다 관찰자에 따라 다른 그림체와 모습으로 등장하는 '히더지 캐릭터'들은 '타인의 시선에 의해 다르게 관찰되는 다면적인 자아'를 상징한다.  

 

<열대광기(Tropical Madness)>는 ‘만약 좀비사태가 발생한다면’ 이라는 미래를 가정하고 나와 한 시절을 함께 보낸 사람들 각자의 기억과, 우리가 함께 나눴을 미래의 추억들을 회상하며 만든 장면 조각모음집이다. 이러한 작품들의 분위기와 감정을 보다 풍부하게 전달하기 위해 남해안 별신굿 이수자이자 작곡가인 SAZA(이호윤)과 각 작품마다 테마곡을 만들었다. 이 음악들과 함께 하는 작품을 감상을 통해 나의 상상속에 존재하는 우리들의 소중한 추억을 마치 영화를 함께 보듯 나누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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