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e#1.
천국 매운탕
Description
<Doohee kim, 천국 매운탕, Cyanotype of pendrawing, 80x117cm, 2023 >




# 천국 매운탕
작품설명
눈이 소복소복 쌓여가는 소리와 그 위를 밟는 쥐들의 분주한 발소리만 가득한 먹자골목의 새벽. 술에 취한 손님들도, 가게의 사장님들도 모두 골목을 떠나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고 나면 이 골목은 쥐들의 세상이 된다. 특히 바나나를 재료로 한 식당들이 주를 이루는 이 골목에서 유일하게 바다 생물이 메인 재료인 ‘천국 매운탕’ 앞은 병약한 노모나 임신 중인 아내를 위해 특식을 찾는 쥐들로 북적인다.
먹자골목의 터줏대감 쥐는 동네 순찰을 하다가, 천국 매운탕집 앞에 뻗어있는 곰대리를 발견하고는 혀를 끌끌 찼다.
[저 인간 저거, 또 저기서 혼자 저러고 있네 쯧]
오늘은 머리에 이상한 걸 뒤집어쓰고 있어서 얼굴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이 시간에 저 앞에 뻗어있는 걸 보면 영락없이 곰대리가 분명하다.
네 번째 주 금요일 밤마다 곰대리는 만취가 되어 늘 같은 자리에 홀로 뻗어있다. 매운탕을 좋아하는 회사 사장과 선배들의 술 시중을 들고,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주는 대로 받아먹는 탓에 언제나 저 꼴이다. 그래도 서너시간 즈음 지나면 그대로 깨어나 곧잘 집으로 돌아갔는데, 오늘은 이 시간까지도 일어날 생각을 않는 곰대리가 어딘가 이상하다.
‘얼어 죽은 것은 아닐까?’, ‘왜 항상 그를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 걸까?’
천국 매운탕은 쥐들에게는 그야말로 천국이지만, 곰대리에게는 어쩌면 지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이 이렇게나 내리는데, 아침이 밝으면 눈을 뜬 곰대리는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놀란 마음이 진정되고 나면, 자신을 홀로 남겨둔 채 떠나버린 회사 동료들에 대한 배신감이 몰려올지 모른다. 그리고 혹시 실수는 하지 않았나 기억을 되짚다가 자괴감이 몰려올 것이다. 토요일인 오늘도 출근해야 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짜증 나는데, 이런 시끄러운 마음들을 꾹꾹 누른 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웃음으로 동료들을 대해야 하는 현실이 더욱 갑갑하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곰대리의 머리에 열린 바나나를 보니 그런 걱정을 해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동료들이 두고 간 덕분에 그는 밤사이 바나나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고, 이제는 이런 속세의 감정과 사고에서 해방되는 중이니까.